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와이 왕조 (문단 편집) == 과학과 문화의 융성 == 부와이 군주들은 아바스 칼리프처럼 학문을 장려하여, [[이슬람 황금기]]를 이어나갔다. 그러나 이슬람 학자들은 부와이 왕조를 대단히 나쁘게 평가했다. 칼리파를 완전히 허수아비로 만든 최초의 선례였던데다 이들이 시아파였기 때문이다. 이 당시 이슬람 학자들의 정부론은 칼리프들이 이미 세속 권력을 거의 잃었음에도 칼리파의 자질로 군사적, 행정적 자질 또한 여전히 강조했고, 칼리파, 즉 '이맘'은 어디까지나 꾸라이쉬 부족 남성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간접적으로 부와이 왕조를 압박하며 디스했다. 즉 이것은 부와이 왕조가 대정봉환하든지, 그렇지 못하겠다면 칼리파위 찬탈 따위는 꿈도 꾸지 말라는 강력한 의사 표시였다. 다만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던 부와이 왕조는 이런 학자들을 한번도 탄압하지 않고 학문적 자유를 보장해주었다.[* 꽤 비슷한 상황이었던 에도 막부의 교토 지식인들이 조선통신사들 앞에서나 이 비슷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반면, 부와이 왕조 치하의 순니파 학자들은 대놓고 이런 주장을 서적 출판이나 서신 교환으로 해도 아무 제제나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. 적어도 그때까진 초기 이슬람 특유의 관용 정신이 살아있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.] [[분류:이란의 역사]][[분류:11세기 멸망]][[분류:이슬람 제국]][[분류:아시아의 아미르국]][[분류:페르시아 제국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